불신자들의 낙원
S2 EP 4
떠나기 전, 에이레는 밀레드를 내보낸 뒤 고백했다. 자신과 밀레드는 타라타의 공주와 왕자이며, 어머니는 서로 다르다고. 떠돌이 무희의 피를 이은 그녀는 다치지 않고 생각이 이루어지는 힘으로 마녀라 불렸고, 어느 밤 법황청의 반란이 왕가를 피로 물들였다. 시체를 넘어 밀레드의 방에 닿아 도망쳤고, 법황청 마법사의 도움으로 말리나에 숨어 십 년을 살았다. 그 마법사가 케흐였다고 키안은 말했다.
로체스트 뱃길이 막혀 라지쿰의 하수로 빠져나가던 중, 베라핌과 마주쳤다. 푸른 수정을 삼키고 세르하의 기억을 지운 자였다. 라지쿰이 말리나로 오라 권했으나 그는 동족을 배반한 겁쟁이라 내뱉고 사라졌다. 로체스트 대성당에서 세르하는 속삭였다. 드윈은 반역으로 처형되었고, 왕국군은 카단을 쫓으며, 길레스피와 레우러스는 서로 다른 뜻을 품었다고.
법황의 입에서 율케스가 흰고래여관을 노린다는 말이 흘렀다. 운명의 돌만 사라지면 왕좌를 취하겠다는 욕망도. 세르하는 남겠다 했고, ‘여신을 믿는 자는 여신의 길을 따른다’는 말을 남겼다. 키안은 다음엔 이름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한 채 말리나로 달렸다.
이미 늦었다. 율케스가 마을 절반을 부수고 있었고, 키안과 신참이 그를 쓰러뜨려도 그는 다시 일어나 에이레를 향해 아퀼로어를 휘둘렀다. 밀레드가 누나를 몸으로 막았고, 불타 사라지는 이단심문관의 뒤에서 소년의 시신이 빛에 감싸여 사라졌다.
에이레는 십 년 전 이미 죽은 밀레드를, 절망 속에 죽음의 신 크로우 크루아흐에게 빌어 되돌렸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부활이 아니라 유예였고, 신의 시신이 에르그가 되어 쌓인 안개 봉우리에서 신은 새 그릇을 찾고 있었다. 빌린 시간으로 자란 밀레드의 몸이 그 그릇이었다. 메브는 낡은 일지를 가리켰고, 케흐가 몸을 바쳐 연 문은 인간과 신이 뒤섞이는 불타는 땅 안누빈으로 이어져 있었다.
케흐의 연구소에 파란 문이 떠 있었다. 엘라한은 스승과 가족을 태운 법황청에 복수하기 위해, 인류의 여명을 가져오는 자가 되려 한다고 했다. 문을 지나 안누빈에 발을 디디자 문지기 라바사트가 불길로 맞섰고, 선인들이 남긴 녹슨 사슬 갈고리로 그것을 쓰러뜨렸다. 재와 시간이 뒤틀린 평원에서 떠 있는 밀레드는 환영일 뿐이었고, 진짜 몸은 화산 중심, 신의 곁에 있었다.
엘라한이 에이레에게 고백을 강요했다. 운명의 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에이레 자신이 운명의 돌이라고. 드루이드의 말로 인간은 본디 돌에서 깎여 숨을 얻었고, 에이레가 밀레드를 다음 왕으로 택한 까닭에 크로우 크루아흐는 그 몸을 탐한다고. 키안은 엘라한이 밀레드를 죽게 두고 산 돌을 신에게 데려왔다 분노했으나, 결국 형의 기록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겠다며 뒤에 남았다.
화산 신전, 잿빛 왕좌에 크로우 크루아흐가 앉아 있었다. 밀레드는 힘을 빌려 준 대가의 보상인 ‘에린의 왕’이며, 에이레는 쇠잔한 신을 안누빈에서 풀어 줄 제물이라고 신은 선언했다. 엘라한에게 힘을 나눠 주자 드루이드는 거대한 짐승으로 변해 제물을 바치려 했으나, 신참의 칼에 쓰러지며 마지막 숨을 고했다.
바닥이 용암으로 무너지고 신이 직접 내려왔다. 죽음의 신은 압도했으나 결정타를 박지 못했고, 남은 힘을 쏟아 발판을 부수려다 실패했다. 따르는 자 없이 신성을 補給받지 못한 크로우 크루아흐는, 바뀐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며 소멸했다. 밀레드가 깨어나 품에 안기는 순간, 검은 용 엘쿨루스가 분화구에서 날아올랐다.
에이레의 몸에서 신성이 새어 나왔다. 운명을 거스른 값이었다. 밀레드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둘을 말리나로 돌려보냈다. 흰고래여관에서 눈을 떴을 때 들린 마지막 말은 ‘불신자들이…’였고, 에이레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잊었고, 여관 주인도, 밀레드도, 신참도 기억하지 못했다. 길드 명단에서 밀레드의 이름은 그어져 있었고, 마법 오두막은 라지쿰이 맡아 책을 읽고 있었다. 살아 돌아온 밀레드는 운명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주어 고맙다 한 뒤, 누나를 되찾을 길을 찾아 떠났다. 콜헨에서 키안은 세르하에게 이름을 알려 주고, 여신을 믿지 않아 그 길을 따르지 않은 불신자들이라서 기억에서 지워진 것이라 짐작했다. 밀레드를 찾아 나서며 그는 신참에게 짧게 감사하고 떠났다. 지친 몸이 다시 잠들 때, 여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아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