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죽여도

S1 EP 8

잉켈스의 잔해에서 거둬 온 조각은 자잘해 보였으나, 자레스가 감정을 마치자 무게가 달라졌다. 아율른 지하 묘지의 파편이라 했다. 봉인되었다고 여겨지던 곳. 카단잉켈스의 반란이 그 묘지에서 본 무언가에서 비롯되었을 거라 직감했다. 금지된 명령보다 금지된 진실이 더 위험했다.

입구를 묻는 카단에게 자레스리엘도 쉽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마법사 길드의 입장이 있었고, 아율른의 파괴와 함께 길이 사라졌다는 핑계도 있었다. 결국 브린의 연구소에서 실마리가 열렸다. 묘지로 드는 문을 지키는 짐승이 있다는 것. 운명이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던 길이, 짐승의 숨을 통과해 다시 이어졌다.

카단은 병력을 모아 아율른으로 향했다. 출발 전 루더렉의 빈자리가 눈에 띄었으나,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묘지를 나와 빛이 돌아오는 자리에서 기다린 것은 지원이 아니라 포위였다. 루더렉이 신임 지휘관으로서 서 있었고, 카단의 칭호는 이미 박탈되어 있었다. 이단. 코를 들이밀면 안 될 곳에 손을 넣었다는 판결이었다.

화살이 날아오르자 드윈이 엄폐에서 뛰쳐나와 카단을 밀쳤다. 대부분의 화살을 제 몸이 받아 내었다. 루더렉이 두 번째 일제 사격을 명하는 순간, 검은 연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전장을 갈랐다. 네베레스의 전이 마법이었다. 그는 신입과 부상한 카단을 한꺼번에 끌어내며, 살린 대상이 누구인지는 나중에야 밝혔다.

누군가는 전체를 지키려면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 왔을 것이다. 루더렉의 칼끝에는 그 계산이 묻어 있었다. 법황청과 왕국군의 질서를 위해 카단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일. 숫자로 따지면 틀린 데가 없는 말이었고,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드윈은 그 계산을 몸으로 거부했다. 상관과 부하, 콜헨에서 쌓인 신뢰와 로체스트의 규율이 한꺼번에 그녀의 등에 박혔다. 쓰러지면서도 카단의 앞을 가리던 그 짧은 동작이, 이후의 모든 복수와 절망의 기점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서로를 예전처럼 보지 못했다. 동료와 적을 가르던 선이 흐려졌고, 명령에 충성하는 일과 사람을 지키는 일이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피로 증명되었다.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아율른의 묘지는 여전히 입을 닫고 있었고, 그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더 짙은 어둠 속으로 미뤄졌다. 다만 그날의 선택이 남긴 자국을 따라, 이야기는 파멸의 노래를 향해 곧장 흘러갔다. 카단의 눈에는 이미 로체스트로 돌아갈 길이 불타고 있었다.